전문직 종사자가 북한에서 하던 일을 한국에 가서도 계속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인민학교 교사였던 여성이 한국 생활을 한 지 5년 만에 북한에서보다 상급학교인 대학의 교수가 된 경우도 있어 동료 탈북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꿈은 이뤄진다” 이 시간에는탈북자 2만 명 시대를 앞두고 성공한 탈북자로 불리는 대학교수 박정순 씨를 소개합니다.
진행에는 저 이진서입니다.
박정순: 우선 이 땅에 와서 모든 것을 성취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성취한 것을 지금처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북한 청진이 고향인 박정순 씨는 올해 1월 한국에 있는 국제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에 임용됐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탈북민정착지원 종합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박 씨는 2003년 10월 두만강을 넘으면서 자신이 한국에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저 잠시 중국에 머물자고 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박정순: 북한에서 아버지와 삼촌을 보위부에서 잡아갔습니다. 그런 문제로 제가 제 3국인 중국에 가서 김정일에게 편지로 호소하기 위해 갔습니다. 중국에서 편지를 보내고 북한 정세를 보고 갈만하면 돌아가고 아니면 중국에 머물러 살려고 했는데 10일 만에 한국을 오게 됐습니다.
한국 생활이 6년 차에 접어든 박 씨가 그처럼 짧은 시간 안에 남한생활에 적응하고 대학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행운이었다고 말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특히 여느 다른 탈북자들처럼 중국이나 제3국에서 오랜 기간을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박 씨는 탈북해 열흘 만에 한국행이 이루어 졌지만, 자본주의 사회나 한국의 실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상태여서 한국에서의 출발은 몹시 불안했습니다.
박정순: 제가 여기에 와서 처음 2개월은 방황했습니다. 한국 정부를 모르고 왔기 때문에 겁을 먹었습니다. 두 달동안 텔레비전을 보면서 결심했습니다. 차근차근 1년에 몇 가지씩 이룬다면 5년 안에 성공은 못 해도 정착은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었고 북에서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한국의 실정과는 사실이 달라서 더 혼란스러웠다는 박씨,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면서 남한의 실정을 파악하는 데 힘썼고 빈손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고 난 다음부터는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박정순: 제가 이 땅에 와서 결심한 것은 첫째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그런데 무슨 공부를 할지 결정하는 문제가 힘들었습니다. 탈북자는 한국에 와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데 그점에 착안해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자 결심했습니다. 학부 공부를 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공부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일했습니다. 북에서의 경험을 살려 지역 아동보호 시설에서 교사 일을 했고 또 자신이 취득한 교육과 상담에 관한 국가자격증과 민간 자격증을 가지고 사회복지사로 일했습니다. 사회복지사란 취약 계층인 혼자 사는 노인과 빈민층의 가정 등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박 씨가 5년 동안 한국에서 취득한 자격증은 모두 36개나 됩니다.
박정순: 사회복지사 2급, 평생교육사 2급, 보육교사 2급, 청소년 상담사, 건강가정사 2급, 심리상담사 1,2급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격이 필요 없었겠지만 그 공부를 한 덕분에 분야별로 알게 됐습니다. 성취할 때 기쁨은 대단합니다.
박 씨는 한국에 갔을 당시35살이 이미 넘어 한국 정부에서 학자금 지원을 전액 받을 수는 없었지만 통신매체를 이용해 수업을 받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절반의 학비를 지원받습니다.
한국 정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개발을 위해 재교육을 원하면 일정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박 씨는 일반대학을 간 것이 아닙니다. 대학건물 안에서 일정한 시간에 교수가 학생에게 학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컴퓨터를 이용해 필요한 내용을 학습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공부하면서 생활을 하는,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도록 한겁니다.
박정순: 대학원 공부는 다 자기 부담이잖아요. 전 시각 장애인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자기 부담으로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이다 보니 한국에서 평생교육센터에 문예강사로 활동 하면서 그 돈으로 대학원 공부를 했습니다. 또 초등학교 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일도 병행 했습니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 모두 6년 과정을 4년 반 만에 끝냈고, 자신이 취득한 자격증은 너무 많아 일일이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부에서는 탈북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을 받아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부러움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 안다면 자신을 보는 눈이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고 박 씨는 말합니다.
박정순: 4년 동안은 잠을 못 잤습니다. 24시간 밝히다시피 했습니다. 모든 과목에 다 영어가 들어가고 서구학자들에 대해 나오는 데 북한에선 러시아 어를 배워서 제대로 공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컴퓨터로 자료를 빼서 공부하느라 하루 3시간 정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도 많이 실려 다녔습니다. 남들은 건강을 챙기라고 얘기했지만 저는 값없이 길게 살기보다 짧게 빛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54살의 박정순 씨는 대학교수인 동시에 현재 3년 과정의 목회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학을 마치면 탈북자로서는 최초로 상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도전한다는 계획입니다.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가면서 만족을 모르는 박 씨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많은 탈북자에게도 좋은 본보가 되고 싶어합니다.
박정순: 꿈은 이뤄집니다. 여성쉼터에서도 꿈이 이뤄지는지 안 이뤄지는가는 나를 봐라, 우선 이 땅에 도착해 사는 이상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열심히 살라는 겁니다. 또 한국 땅에서 배우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배우는데 애쓰면서 살라고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목표가 정확히 세워져 있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면 꿈은 이뤄진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청소년을 위한 방과 후 교실과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박정순 씨는 정말 바쁘게 사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꿈은 이뤄진다’ 오늘은 한국 국제디지털대학 객원교수이며 탈북자정착지원 종합상담센터 소장인 탈북여성 박정순 씨의 얘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nest/dream_come_true-102020091335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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